‘고깃집 아들들’의 고깃집은 뭔가 다르다

아버지 가업 이어받은 아들들
기존 고깃집 디자인·메뉴 혁신해 고급 레스토랑으로 진화
“물려받은 원칙 빼곤 모두 바꾼다”

#1. 윤기 흐르는 가죽 소파와 화려한 샹들리에, 여럿이 앉기 넉넉한 원목 테이블…. 고급 레스토랑이나 5성급 호텔 분위기지만, 이곳은 서울 마장동 정육시장에 있는 ‘본앤브레드(Born & Bred)’다. 송로버섯을 얹은 비프 타르타르부터 안심·채끝·안창살·생갈비 숯불구이, 소고기 샤부샤부, 야키니쿠를 얹은 초밥, 햄버거 스테이크, 규카츠 샌드위치, 양념갈비 등 한우 온갖 부위를 다양하게 맛볼 수 있도록 주인이 알아서 내주는 ‘오마카세 스타일’로 2015년 개업 직후부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프랑스 레스토랑처럼 차분하고 세련된 분위기와 달콤한 후식을 갖추고 ‘파인 다이닝(fine dining)’을 내세운 고깃집들이 늘고 있다. 이런 변화는 ‘고깃집 아들들’이 이끌고 있다.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은 아들이 식당의 콘셉트와 디자인, 메뉴까지 혁신해 가업을 진화시키고 있다.

가장 일찍 두각을 나타낸 사람은 박영식 SG다인힐 대표다. 삼원가든 창업자 박수남 회장 아들인 박 대표는 2007년 SG다인힐을 설립해 스테이크집 ‘부처스 컷’과 숙성 한우 전문점 ‘투뿔등심’, 햄버거점 ‘패티패티’, 이탈리아 레스토랑 ‘부띠끄 블루밍’ 등 12개 브랜드 29개 매장을 운영하는 중견 외식업체로 키웠다.

본앤브레드 정상원(36) 대표 아버지는 1978년 설립된 한우 유통업체 ‘한우고향’ 창업자다. 정 대표는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가업을 이으라”는 아버지 권유에 일을 배우다 한우에 대한 자부심이 생겼다. ‘마장동의 가치를 인정받으려면 기존 틀을 깨야겠다’고 생각해 비어 있던 가게 2층을 고기 연구소 겸 정육점으로 꾸몄다.

본앤브레드는 고깃집이라기보다 ‘한우 박물관’ 같은 공간이다. 정 대표는 ‘부티크 정육점’이라 부른다. 손님은 매일 저녁 1팀만 받는다. 고기는 1인당 600g 정도씩 ‘질리게 먹을 만큼’ 제공한다. 정 대표가 직접 부위·숙성·등급별로 고기를 구워주고 설명해주는 이 식탁이 소문나면서 “예약하면 성공”이라고 할 정도로 인기다. 대략 8명까지 식사할 수 있으며 비용은 1인당 20만원가량이다. 정 대표는 “정육 과정을 볼 수 있는 쇼룸과 더 많은 인원이 더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공간을 5월쯤 열 계획”이라고 했다.

한육감 이준수 대표는 허영만 만화 ‘식객’에도 나온 한우 전문가 이명호씨 아들이다. 이 대표는 아버지가 운영하는 정육식당 ‘참누렁소’에서 독립해 2014년 한육감을 차렸다. 이 대표는 “고기를 다르게 먹는 방식을 제안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프랑스 요리학교 코르동블루에서 배운 양식 요리사를 영입하고 토마호크, 립아이 등 서양식으로 떠낸 고기를 한국식으로 각 뜬 고기와 함께 낸다. 전채와 후식을 강화해 코스 요리화했다. 여성이나 외국인 손님들 만족도가 높다. 그는 “맛과 서비스가 싱가포르에서도 통할 수 있는지가 식당 운영 기준”이라고 말했다.

혁신을 추구하지만 물려받은 노하우와 원칙은 고수한다. 정 대표는 “당장의 이익을 노린 얄팍한 상술은 오래 못 간다. 맛있고 좋은 고기를 내는 게 비법이라고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아버지는 항상 마진(이윤)은 낮추고 볼륨(매출)을 높이라고 하셨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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